sungyup's.

맥베스
William Shakespeare·권오숙

맥베스

눈앞의 빛나는 것에 속아넘어가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

Jul 13, 2025

BookEnglish Literature

들어가며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William Shakespeare
Macbeth 1막 1장, 마녀들의 대사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작품들에서 보이는 것(외양)과 대상의 실체(실재) 간의 간극을 보여주며,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가는 인간들의 무지와 연약으로 초래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린다.

딸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 진짜배기였던 코델리어를 내친 리어왕, 이아고의 친절한 말과 위장된 충성에 속아 넘어가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오셀로는 모두 대상의 실재를 볼 수 없어 외양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햄릿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햄릿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왕을 행세하는 국왕시해자 클로디어스에게 속아 넘어가고 햄릿은 이를 바로잡다가 죽는다. 물론 유령한테 햄릿만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선 넘어가자. 햄릿은 다소 예외적인 작품이다.

이들이 속는 이유는 모두 너무나도 인간적인 결점들 때문이다. 리어왕은 오만과 급한 성격, 오셀로는 질투 때문에 속는다. 맥베스는 고귀한 영혼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주위의 부추김에 의해 왕관이 주는 광채에 속는다.

그리고 마녀들의 말대로, 그 아름다웠던 왕관은 맥베스의 잠을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종전에는 그의 영혼까지 죽여 그의 삶의 덧없는 촛불을 꺼버린 더없이 추한 것이었다.

“Sleep no more! Macbeth does murder sleep”—the innocent sleep, Sleep that knits up the raveled sleave of care, The death of each day’s life, sore labor’s bath, Balm of hurt minds, great nature’s second course, Chief nourisher in life’s feast.

이젠 잠을 자지 못한다. 맥베스의 잠은 죽었다고. 이 천진난만한 잠. 나날의 생명의 죽음인 잠, 대자연의 가장 좋은 요리인 잠, 생명의 첫째가는 영양분인 잠을!

William Shakespeare
Macbeth 2막 2장, 맥베스의 대사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This castle hath a pleasant seat; the air nimbly and sweetly recommends itself unto our gentle senses.

성이 아주 쾌적한 곳에 자리 잡았구려. 과인이 느끼기에, 신선한 공기가 아주 잘 통하고 있는 것 같소.

William Shakespeare
Macbeth 1막 6장, 덩컨 왕의 대사.

성이 아주 쾌적한 곳에 있어서 신선한 공기가 잘 통한다고 흡족해하던 덩컨 왕은 그 성에서 비겁한 술수로 인한 잔인한 죽음을 맞는다.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닌 것이다.

어제의 충신 맥베스는 오늘의 반역자가 된다. 맥베스 부인은 연약한 외모(맥더프는 2막 3장에서 그녀가 살인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는 것조차 감당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아래 남편의 살인을 부추기는 어두운 내면을 가졌다.

Look like the innocent flower, But be the serpent under't.

순진한 꽃처럼 보이시되,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뱀처럼 행동하십시오.

William Shakespeare
Macbeth 1막 5장, 맥베스 부인의 대사

왕관은 맥베스 부부에게 더없이 고귀하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아름답던 왕관은 이들을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마녀들의 예언은 운명을 알려주는 빛나는 예언 같았지만, 실상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하는 덫이었다.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What bloody man is that? He can report — As seemeth by his plight — of the revolt the newest state.

피를 흘리고 있는 저자는 누구냐? 역모의 최근 상황을 알려 줄 법한 몰골이구나.

William Shakespeare
Macbeth 1막 2장, 덩컨 왕의 대사

피를 흘리고 있는 몰골을 경멸스럽게 보는 덩컨 왕의 대사와는 달리, 그는 맬컴 왕자를 구하기 위해 충성스럽고 용감하게 싸운 부사령관이었다. 다시,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닌 것이다.

맥베스의 추악한 음모로 더럽혀진 왕국은 이전에는 그저 아름다웠을까? 그렇지 않다. 작품의 첫 장면은(마녀들의 인트로격 1장이 끝난 후) 맥베스가 맥도널드의 반란을 유혈낭자 잔인하게 진압하고 왕이 그의 공을 치하하는 장면이다. 이는 작품 마지막에 맥더프가 맥베스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왕이 된 맬컴이 그의 공을 치하하는 장면과 다를게 없다.

다시 말해, 정통을 이은 왕위들도 사실은 피와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던 것이다. 덩컨 왕을 시해한 맥베스는 말한다.

Will all great Neptune’s ocean wash this blood Clean from my hand? No, this my hand will rather The multitudinous seas incarnadine, Making the green one red.

내 손에 묻은 이 피를 바다의 모든 물로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이 손이 광대한 바닷물을 진홍빛으로 물들여 그 푸른 물을 붉게 만들 것이다.

William Shakespeare
Macbeth 2막 2장, 맥베스의 대사

하지만 실상 더 많은 피를 흘린 것은 맥베스의 왕 시해가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왕국'을 유지하기 위한 두 번의 반란 진압이었다. 잔인하고 추한 반란 진압으로 아름다운 왕국이 유지되는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추한 것

So foul and fair a day I have not seen.

이렇게 궂으면서도 아름다운 날은 처음 보는군.

William Shakespeare
Macbeth 1막 3장, 맥베스의 극중 첫 대사

아름다워보이나 추한 것, 추해보이나 아름다운 것 외에 아름다우면서도 추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맥더프는 맬컴 입장에선 충신이지만 맥베스 입장에선 반역자이다. 마녀들은 진실을 말하는 존재들이지만 그 진실이 인간의 탐욕을 부추긴다.

앞서 본 아름다워보이나 추한 것, 추해보이나 아름다운 것과 함께 생각해봤을 때 셰익스피어는 맥베스를 통해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타자의 내면을 볼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외양을 토대로 판단하지만, 외양과 내면은 간극이 있다.

또한, 외양이든 내면이든 절대적으로 이게 아름답다 추하다라고 판단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아름답고도 추한, 관점에 따라 미추가 바뀌는 양면적인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든지 있는 정도를 넘어 세상 모든 것이 그럴지도 모른다. 맥베스의 반란 진압은 충신의 아름다운 행동이었을 수 있지만 맥도널드 입장에선 자신을 죽인 원수의 행동이다. 또, 심지어 덩컨 왕의 입장에서도 이 충신의 아름다운 행동이 결국 맥베스의 탐욕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비극의 서막(문자 그대로)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추하고, 추한 것이 아름답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선택할 수 있을까?

양심을 넘어선 욕심의 대가

인간은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만 세상은 흐릿하고 외양과 실재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모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비극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의 삶이 맥베스처럼 비극적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운명이었다면, 맥베스 본인이 그 운명을 앞당기려 왕을 시해할 필요는 없었다. 맥베스와 부인이 고통 받는 것은 왕관이 주는 무게라기보단 운명을 앞당기려 욕심을 부린 행동으로 자신의 손에 묻은 피가 씻기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Will all great Neptune’s ocean wash this blood Clean from my hand? No, this my hand will rather The multitudinous seas incarnadine, Making the green one red.

내 손에 묻은 이 피를 바다의 모든 물로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이 손이 광대한 바닷물을 진홍빛으로 물들여 그 푸른 물을 붉게 만들 것이다.

William Shakespeare
Macbeth 2막 2장, 맥베스의 대사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셰익스피어는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되 그런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말것양심을 넘어선 욕심의 대가에 대해선 처절하게 보여준다. 즉, 양심의 선을 넘어서라도 얻고 싶을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을 믿지 말고, 혹여나 양심의 선을 넘는다면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값비싼 대가를 제외하고도 양심의 선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생이 허망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순환 구조로 되어 있어 시작과 끝 모두가 반란 진압인 맥베스의 비극은 인간 탐욕의 허무함을 노래한다. 인생은 마치 미치광이가 떠드는 이야기처럼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맥베스의 방백은 이 허망함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5막 5장, 맥베스의 방백

원문
1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2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3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4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5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6
The way to dusty death.
7
Out, out, brief candle!
8
Life's but a walking shadow,
9
a poor player
10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11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12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번역
1
왕비도 언젠가는 죽어야겠지.
2
그런 소식을 언젠가 한 번은 들어야겠지.
3
내일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4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는 거지.
5
우리의 어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보여주지,
6
우리 모두가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7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이여!
8
인생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9
실력 없는 연극 배우.
10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녀도
11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나니. 마치 바보 천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서
12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도다.

나오며

맥베스의 비극엔 상당히 명확한 악인인 맥베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명백한 악행들을 저지르는 그는 범행 전에는 계속해서 양심에 찔려하는 대사를 하고, 범행 후에는 미쳐버리고 피로 얻은 왕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도 죽이고, 또다시 그에 대해 후회한다.

I am in blood Stepp’d in so far that, should I wade no more, Returning were as tedious as go o’er.

나는 너무 피에 젖은 나머지 더 이상 나아가기도 힘드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은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일터.

William Shakespeare
Macbeth 3막 4장, 맥베스의 대사

마녀들의 부추김에 의해, 이후엔 아내의 부추김에 의해 갈등하고 방황하고 번민하던 그의 속마음은 극 중 계속된 방백들로 나오는데, 하나하나가 아주 강렬하고 슬픈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절정은 앞서 언급한 5막 5장의 방백이다. 악인을 이토록 고결하고 슬프게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 때문이리라.

2막의 문지기는 술에 대해 말하며, 술은 음욕을 부추기고는 정작 실행 능력을 앗아가서 만족을 시키지는 못하는 사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Marry, sir, nose-painting, sleep, and urine. Lechery, sir, it provokes and unprovokes. It provokes the desire, but it takes away the performance. Therefore much drink may be said to be an equivocator with lechery.

딸기코 만들기, 졸음, 오줌. 이 세 가지입죠. 음욕은 불러일으켰다가는 다시 잠재워 버리죠. 다시 말해 술이란 놈은 음욕을 부추기고는 그 실행 능력을 앗아 가버립니다. 그래서 과음은 색욕에 있어서는 사기꾼이라고 할 수 있습죠.

William Shakespeare
Macbeth 2막 3장, 문지기의 대사

맥베스에게는 마녀의 예언이, 아내의 재촉이 그랬다. 맥베스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결코 맥베스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것들은 진실을 가장한 사기꾼이며, 아름다운 꽃 아래에 있는 뱀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어쩌면 그런 '예언'들이 있다. 이것만 되면 모든게 풀릴 것 같고, 저것만 손에 넣으면 아주 행복할 것 같고...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무려 왕위를 얻은 자가 잠과 아내와 영혼과 목숨을 잃은 맥베스의 비극을 통해 말한다. 외양과 부추김에 끌려가서 선을 넘게 된다면, 인생이라는 아주 값비싸고도 허망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