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days of wine and roses, laugh and run away, like a child at play..."
- 노래 The Days of Wine and Roses 중 -
들어가며
아내와 함께 병원을 다녀오며, 알라딘 중고 책방을 들러서 책들을 둘러보다가 함께 커플로 맞춰 펭귄 클래식 문학 전집에서 고른 책 중 하나다.(아내는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를 골랐다)
블로그 개발을 어느 정도 끝내고 본격적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늘 내 문장, 또는 표현력이 아쉬웠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관찰 또는 인내가 부족해서 그런거겠지만,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행위 자체에서 기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문학 전집에 꽂혀있는 수많은 작가 이름들에서 딱 눈에 들어온 것이 피츠제럴드였다. 위대한 개츠비. 오래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당시 위대한 개츠비에 나온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 뛰어난 관찰력과 다정한 시선에서만 나올 수 있을 법한 표현들은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을 내게 깊이 심어주었다.
그렇게 기억에 남은 피츠제럴드의 시선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이 책을 집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안 본지라, 유명한 작품의 내용을 아직까지도 모르는게 부끄러웠기에 더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재즈 시대의 여러 장면들을 관통하는 시선

여러 서로 관련없는 단편과 실험적인 희곡들을 묶어둔 단편집이지만, 모든 단편들이 재즈 시대로 불리던 미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공유한다. 이 시기는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화려하게 빛나던 때였다. 단편들은 그 분위기를 반영해 늘 파티와 샴페인이 나오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들이 나온다.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쳐 말괄량이처럼 보이는 그녀들과 함께 나오는 것은 그런 여성들을 사랑하는 남성들이다. <젤리빈>에서는 젤리빈이 낸시 라마를 사랑하고, <낙타의 뒷부분>에선 페리가 베티를 사랑하고, <노동절>에선 고든이 에디스를 사랑하고, <오 빨간 머리 마녀!>에선 멀린이 캐롤라인을 사랑한다.
이들은 파티의 모든 이들이 탐내는 그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수수한 매력들로 파티에서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마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여성들은 우연히 남자들에게 말을 걸고, 우연하지만 개인적이고 솔직한 계기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고 근사한 파티를 함께한다. 꿈과 같은 시간이다.
"젤리빈." 그녀가 말했다. "여기 있어, 젤리빈? 내 생각에......"
그녀가 약간 흔들리는 모습도 마법에 걸린 꿈의 일부처럼 보였다.
"내 생각에, 넌 내 가장 달콤한 키스를 받을 자격이 있어, 젤리빈."
순간 그녀의 팔이 그의 목을 감싸 안았고,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눌렀다.
"나는 이 세상을 미친듯이 사는 애야. 그런데 넌 내게 친절을 베풀었지."
그리곤 그녀가 가버렸다.— <젤리빈> 중
그러나 꿈과 같은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는 충분히 지속되었고 다음을 기약하기에 적당하다고 할 만한 시간이지만, 주인공에겐 정신차려보니 벌써 그 황홀한 시간이 지나있는 것이다.
"안녕." 그녀가 간단히 말했다.
"가는 거에요?" 그도 그녀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미련이 남아 단순히 시간을 끌자고 한 말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붙들어 두고 그녀의 존재에서 그가 얻은 그 눈부신 빛의 정수를 끌어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모습에서 커다란 만족감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녀의 모습은 키스와도 같았고, 또, 그가 예전 1910년, 한 때 알았던 여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잠시 동안 그는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뺐고, 그가 뛰어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알아서 문을 열고는 47번가를 죄어들며 뒤덮고 있는 흐리고 음울한 땅거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 빨간 머리 마녀!> 중
주인공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만남을 고대하지만, 그 만남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만남의 꿈은 거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온데간데 없이 터져버린다. 젤리빈은 바로 다음날 낸시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멀린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캐롤라인이(사실 이름이 캐롤라인도 아니었다) 유명한 댄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평생 그녀를 그렸던 멀린의 낭만적인 꿈이 깨진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멀린은 9시가 되자 아주 조용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는 문 옆에 잠시 서 있었다. 그의 가는 팔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줄곧 바보였음을 알게 되었다.
"오 이런 빨간 머리 마녀 같으니라고!"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은 유혹에 저항했던 것에 대해 신에게 분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하늘에 가서 자신처럼 지상의 삶을 낭비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뿐이었다.— <오 빨간 머리 마녀!> 중
피츠제럴드의 소박한 주인공들이 황홀한, 꿈같은 순간을 맞이했다가 순식간에 몰락하는 결론을 맞이하는 것은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공통된 서사구조는 피츠제럴드의 시선이 화려하게 빛을 뿜어내다가 몰락한 미국 재즈 시대를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클리셰를 변주하는 빛나는 재치
하지만 이 진부하다면 진부한, 허망하다면 허망한 피츠제럴드의 서사는 그의 여러 단편들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예를 들어, <낙타의 뒷부분>에서는 유쾌한 반전과 함께 주인공이 승리를 거둔다. <노동절>에선 오히려 화려한 여주인공이 초라한 남자 주인공을 사랑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완전히 몰락한다.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에선 아름답고 황홀한 꿈의 순간이 엄청난 다이아몬드 산과 저택에서의 시간이라는 옷을 입고 나온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선 주인공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빛나는 젊음의 순간이 거꾸로 그의 중년기에 찾아온다.
물론 모든 얘기들에서 한때 아름다웠던 꿈들은 깨진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재치로 인해 이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여운과 뒷맛을 남긴다.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슬픔을 주기도, 허망함을 주기도, '웃픔'을 주기도 한다. 어찌보면 평범한 주제와 이야기를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다는 것이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꿈이었네." 키스마인이 한숨을 쉬며 별들을 바라보았다. "옷 한 벌과 무일푼 약혼자와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정말 신기해! 별 아래에서." 그녀가 되풀이하여 말했다. "나는 전에는 별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누군가의 커다란 다이아몬드라고 항상 생각했었죠. 그런데 저 별들이 이제는 날 겁나게 하는군요.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내 모든 어린 시절이 꿈이었다고 느끼게 만들어요."
"정말 꿈이었어요." 존이 조용하게 말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꿈이에요. 일종의 화학적 광기지요."—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중
그 외에도...
재즈 시대의 화려함과 몰락, 황홀한 꿈의 빛나는 순간과 산산조각 나는 순간. 단편집은 이 이미지가 강렬하게 관통하지만, 예외들도 있다. 특히 그의 단편 희곡들이 그렇다. <자기와 핑크>, <이키 씨>, <제미나, 산 아가씨>는 실험적인 느낌이 나는데,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분위기다. <이키 씨>에 나오는 대사들이나 물건들은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들린다.
다른 자식: 농부들이 이 나라의 근간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가 근간이 되고 싶어 하나요?
다른 자식: 난 내가 샐러드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상추를 캐든 상관하지 않는다고요!
성경책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하나 그날 따라 잘 안되는 이키 씨는 마지막에 죽은 것 같지만 확실히 그렇게 나오진 않는다. 피츠제럴드는 이키 씨의 시신에 나프탈렌을 두고 끝을 이렇게 맺는다.
(연극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고, 무한대로 계속될 수도 있다.)
이키 씨에 대한 대우가 모독적이라고? <제미나, 산 아가씨>에선 사랑하는 두 주인공 연인을 불태우고 함께 시내로 던져버린다.
나오며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은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거나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가진 것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름다운 묘사와 꼼꼼한 관찰을 토대로 하였지만 과하지는 않은 그의 섬세한 표현으로 된 여러 이야기들은 미국이 가장 빛나던 시기인 재즈 시대의 황홀함과 그 이면의 쓸쓸함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달한다.
비록 미국의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지만, 황홀한 순간이 영영 지속될 수는 없으며, 빛났던 만큼 씁쓸한 끝을 가져오리라는 진리는 동서고금을 꿰뚫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황금기를 맞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그리워하고 허망해하지 않는가. 세상 모든 것이 변하며 헛되다는 것은 언제 느껴도 슬프면서 아름다운 진리다. 이 오랫동안 빛나온 진리를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속했던 재즈 시대라는 특수한 프리즘에 아름답게 투과해내,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한 단편과 희곡들을 우리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