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gyup's.

새로운 인생
Orhan Pamuk·이난아

새로운 인생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미친듯이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초현실적 알레고리

May 13, 2025

BookTurkish Literature

들어가며

아내와 파주의 지지향으로 북케이션을 갔을 때 읽었던 두 권의 책들 중 하나다.

시간을 내서 북케이션을 온만큼 기존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책을 읽고 싶었는데, 민음사 문학 전집 섹션을 보던 중 생소했던 파묵의 책을 잡게 되었다. 서양 문학이나 극동아시아 문학은 상대적으로 많이 접해보았기에, 거의 접해본 적 없는 튀르키예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 이 특별한 휴가를 보다 기억에 남을 시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여러모로 내가 원했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우선, 현대 순수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내게 포스트모던한, 초현실적인 서사를 들려줬다. 또, 튀르키예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잘 모르는 내게 튀르키예의 동시대 문제인 튀르키예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 간 갈등에 대해 보여주었다. 여기에 더해, 배경 자체가 이제껏 내가 봐온 문학 작품의 배경들과는 전혀 다른 현대 튀르키예였는데 이것 또한 내게 몹시 새로웠다.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이지만 마술적인, 초현실적인 이야기. 여기서 오는 생소함, 생경함을 약 9시간에 걸쳐 내게 안겨줌으로 이 책은 내 휴가를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

reading new life
지지향 북케이션 중. 개인적으로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었어서, 출산 후 아이가 자라고 나면 같이 종종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빼놓을 수 없는 도입부

이 책을 얘기하는데 있어 가장 처음 시작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첫 장에서부터 느껴진 책의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내 몸이 앉아 있던 책상과 의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 몸이 나로부터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의 영혼 뿐 아니라 나를 나이게 만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 놓여 있는 바로 그 책상 앞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위 문장에 이어 꽤 긴 페이지들이 그 책이 준 강렬한 인상과 영향에 대한 다채롭고 신비스러운 묘사이다. 처음엔 이 묘사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 책이 그 정도로 강렬한 책이라는 생각을 넌지시 독자에게 주입하고자 다소 과하고 티나게 묘사하는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또는 다 읽고 나면) 이 묘사는 아주 강렬했었어야만 했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면, 이 책이 '인생을 바꿀 정도의' 강렬함을 주지 못하는 책이라면 이어질 내용들의 개연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묘사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미 나는 이 책의 내용 자체는 맥거핀과 같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충격적인 내용을 담아도 이 표현들을 따라가기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신비롭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적인 스토리로도 현실적 재미를 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로 강렬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해도 이후의 진행은 상당히 초현실적이다. 길게 묘사되는버스 여행 장면이 특히 그렇다. 주인공 혼자 떠난 버스 여행도 그렇고, 자난을 우연히 만나 함께 메흐메트를 찾아 떠난 버스 여행도 그렇고 모두 굉장히 길고 자세히 묘사되면서 사실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작가도 현실적인 느낌을 주려는 것 같지 않다. 버스에서 나오는 수많은 다양한 영화들의 이미지들을 겹쳐서 보여주며, 또 시공간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묘사하며 여행의 부분부분이 모두 중요한 사실적인 이야기의 일부라기보다는 차라리 전국을 떠도는 버스 여행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적 비유나 알레고리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는 애초에 여행을 떠나서 이루려는 목적 자체가 비현실적인데다가,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기인 그 책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온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자난을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사고가 나서 신분을 도용하고, 우연한 계기로 나린 박사와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메흐메트를 만나고, 이후 자난이 알고보니 자신이 메흐메트를 찾으면서 만났던 의사와 결혼하고... 하는 내용들은 마냥 우연하지만은 않게 설명되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그 책이 사실 르프크 아저씨가 쓴 책이었다거나, "비란바" 역의 이름을 까먹었다가 다시 생각한 것이나, "새로운 인생" 캐러멜의 할아버지가 알고보니 비란바 마을의 간이 극장에서 샹들리에를 받던 사람이었다거나 하는 것도 다 복선을 회수한것 같아도 사실 전부 개연성이 크지 않다.

우연과 사고를 믿는 독자들이, 그리고 르프크 아저씨의 일을 우연과 사고로 치부하지 않으리라 믿는 독자들이 모두 예상한 바대로 역의 이름은 비란바였다.
p.351

이런 초현실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지지만 어찌저찌 말이 맞게 이어붙인 이야기로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나는 꽤 즐거움을 느꼈다. 인생이란게 다 우연의 연속 아니겠는가. 태어난 것도 우연이고,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우연이고, 죽는 것도 모두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전혀 개연성 없이 죽는다.

selecting new life
어느 날 뜬금없이 내가 파주에 간 것도, 갑자기 안 읽던 문학 책을 읽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전부 불분명한 목적으로 방황하다가 생긴 우연이다.

목적 자체도 불분명한데다가, 그 불분명한 목적을 이루기에 비합리적인 방법인 것으로 보였던 버스 여행에 모든 것을 베팅한 주인공과 자난처럼 우리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불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비합리적인 방법에 베팅하곤 한다. 그리고 이후에 모든 말을 맞춘다. 이건 이래서 이랬고 저건 저래서 저랬고...

우리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미친듯이 추구한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남들이 전혀 이해 못하는 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어떤 이들은 오로지 권력을 얻기 위해(얻고 나선 뭐하게?) 다른 사람들은 다 안된다고 해도 뭔가에 홀린듯 모든 것을 베팅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무언가 뚜렷한 것을,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차근차근 목표에 도달하고 있는가? 행복한 인생? 가정의 평화? 부? 모두 그 책만큼이나 그 사람에게는 강렬한 목표일지 몰라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일테다.

독특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메타픽션 요소들

이 책은 초현실적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메타픽션적 요소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은 이야기를 하며 계속 독자와 소통하려고 한다. 주인공은 종종 "독자"를 불러 말을 걸어 공감을 구하고, 때론 몰아붙이기도 한다.

여섯 시간 동안 그가 장님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나의 주의력과 지능을 비웃는 호전적이고 조롱하기 좋아하는 독자에게, 나 역시 호전적인 자세로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의 모든 구석구석을 충분히 주의하면서 지능적으로 보았는가? 예를 들어, 천사에 대해 처음 언급했던 장면의 색깔을 지금 기억할 수 있는가? 또는 철도의 영웅들이라는 작품에서 르프크 아저씨가 회사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이 새로운 인생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즉시 말할 수 있는가? ...(후략)...

작품을 아주 세세하게 읽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처럼 묘사가 화려하고 엄청나게 많은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주인공의 이 말은 '하나하나 빠지지 말고 다 읽어라'는 질책이라기보단 하나하나 다 기억하기 어려운 초현실적 서사에 독특한 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주인공은 마치 죽는 그 시점, 또는 죽음 이후에 독자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효과를 가져온다.

본능적으로 운전사를 보았을 때, 무언가가 앞 유리창 전체를 가공할 힘으로 덮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60~70미터 전방에 서로 추월하려는 두 대의 트럭이 우리를 향해 전조등을 곧바로 비춘 채 우릴 덮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사고를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았다. ...(중략)... 맨 앞 좌석에 앉아 다가오는 트럭들의 빛을, 책에서 분사되는 가공할 만한 빛을 보았던 것처럼 감탄과 두려움으로 눈부시게 바라보며 나는 즉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려 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죽는 것을, 새로운 세계로 들어 가는 것을, 결코, 결코 원하지 않았다.

나오며

'새로운 인생'까지는 아니었어도,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내게 확실히 새로운 경험을 준 책이었다.

문학의 목적...에 대해서는 나는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하지만 문학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때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이 남는 경험을 내게 주었다.

튀르키예 전국을 누비는 버스 여행, 그리고 스쳐가는 수많은 다양한 영화 장면들, 시장 거리, 마을들. 그리고 전통 튀르키예 문화와 서구 문명의 충돌과 갈등. 첩보와 살인. 그리고 강렬한 짝사랑... 휴가를 떠나 새로운 세계에 푹 빠졌다가 오고 싶은 내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